쉽게 떠오로는 몸에게
2월 초였다. 다리 사이로 흙이 쏟아졌다. 아니 벌린 다리 자체가 쏟아져 내렸다. 비닐로 싸여 있던 흙덩어리가 한파에 얼어 터져서 무너졌다. 아직 팔과 얼굴이 없어도, 몸 전체가 비닐에 싸여 있어도 다리를 벌리고 서서 숨을 길게 들이마시려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배 부분이 볼록 나와 있어서 또 다른 몸 하나가 그 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몸일까
몸과 몸이 부딪히는 소리일까
의외의 일일까
줄어드는 말수일까
화가 나면 잠을 못 자고 잠을 못 자면 화가 나요
무례한 것에 화가 났습니다 화를 냈어요
화를 내도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아 달라졌죠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이 지나고
물기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이 맑아진 다음날처럼
싹 사라졌습니다
기분이
사라진 것 같아요
사람의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허벅지. 그 덩어리들은 바닥에 쌓이고 흩어졌다. 마치 다리 사이에서 양수가 터진 것처럼. 허벅지가 지탱하던 것을 대신하듯 두 발은 여전히 바닥을 정확하게 딛고 있다. 두 발 사이에서 점점 가벼워지는 허벅지의 잔해들.
무너진 돌탑 같았습니다
노인이나 신이 여기에 있었던 것처럼
건강과 행운을 빌던 이들을 떠올리며
돌 위에 돌을 올려 두었어요
돌이 있던 자리
돌이 있던 자리
물을 줘야 할까요
무덤같이
기도같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
얼굴을 쳐들고 고르던 숨이 아래로 쏟아진 것 같다.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들이 쌓이면 이런 모습일까. 하나의 몸으로 쉬는 숨일까. 두 개의 몸으로 쉬는 숨일까.
표면이 매끄러운 종이에 쓴 글자들이 떠 있는 것처럼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벽 앞에서 편안하게 자리를 잡을 수 없는 것처럼
목소리가 없는 기도처럼
꿈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조각을 만들었는데
형상이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들이마시는 숨이 늘 조금씩 모자라요
낙엽처럼 나무에서 떨어지는 새를 봤어요
크고 무거운 낙엽이라 생각하고 다가갔을 때
새는 옆으로 몸을 돌린 채 죽어있었습니다
숨보다 먼저 떨어졌을까요
새는 아직 얼굴을 갖고 있었습니다
숨이 멎은 얼굴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와 상관없던 새가 갑자기 나를 세계와 단절시켰습니다
우리는 정말 서로에게 무관했을까요
나는 죽은 새의 기분으로 오늘을 살았을까요
죽은 새는 나의 기분으로 태어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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