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열과 같은 것이 그의 어깨를 파고들어간다
잘 모르겠다. 시를 사랑한 건지 시인을 사랑한 건지. 어쨌든 이루어지지 않은 그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작업들은.사랑은 허공을 매달고 쏟아지는 못이 되었고, 단단한 허공들이 그의 작업 여기저기에 스며들었다. 사랑은 그를 구분 짓는 모든 것에서 떼어놓았고, 가능성보다는 불가능성에 마음을 두게 했다.

낮에는 살갗이 타들어 가도록 햇살이 강했고 저녁에는 비가 내렸다
. 그는 눅눅해진 방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침대에 누워있다. ‘100년 이상 된 집이라는 문구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냥 낡은 집이다. 나무로 된 현관문을 열고 닫을 때는 끼익 소리가 나고,곳곳에서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난다. 거실의 원형 테이블 위에는 새장이 있고,새는 없다. 벽에 그림 하나가 걸려있는데 그림 속의 사람은 다리를 꼬고 앉아있다.오른 팔을 의자 등받이에 걸치고 그 팔위로 얼굴을 기대고 있다. 그 사람의 살은 그림 속 벽색이기도 하고, 의자색이기도 하고, 그림자색이기도 하다.거실을 지나는 복도와 식탁 밑에는 카펫이 깔려있고 군데군데 그림 몇 점이 더 걸려있다. 카펫은 집처럼 오래되어 보이고, 그림들은 오래되지 않아 보인다. 그는 집주인의 취향을 짐작할 수 없다. 매트리스가 그가 쓰던 것보다 물렁거려서 사흘 내내 몸이 개운하지 못하다. 그는 이 집을, 이 매트리스를 열흘하고도 이틀을 더 써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덮고 벴던 것인지 알 수 없는 이불과 베개. 그것은 지금 그와 가장 가까이 닿아있다. 이불과 시트는 여러 번 쓰고 여러 번 세탁한 것 같은 촉감이다. 그는 어떤 사람들이 이 매트리스 위에 누웠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궁금하지 않기도 하다.이 매트리스 위에 누웠던 사람들이 그의 꿈에 나타나지는 않았다. 누워있는 그를 향해 다가오던 사람은안 되겠어. 안을래.”라고 말하며 그를 안았다. 안는 순간 다른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그 사람은 놀란 것 같았지만 당황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팬티를 입었다. 그는 그 사람에게 믿음이 갔다. 믿음이 생긴 상태로 꿈에서 깼다. 꿈속에서 다가온 사람은 그가 아는 사람이었다. 꿈 밖에서는 그를 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그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자신의 상태가 혼란스러우면서도 좋다고 생각한다. 방문을 열자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고, 그 사람이 보고 싶었다.

그는 버스를 탈 때마다 종종 비슷한 상상을 한다
. 버스가 물로 떨어져 가라앉는다. 버스가 달리는 길옆으로 물이 보이지 않아도 같은 상상을 한다.그리고 두리번거린다. 이번에 탄 버스의 창문은 이중이다. 깨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비상 망치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보이지 않는다. 소화기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보이지 않는다.불안해질 때 다른 쪽에 앉은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계속 마주친다.그는 잠시 그를 향해 한 번 웃어줄까 하다가 괜한 짓이라 생각하고 어색하게 눈길을 돌린다. 그는 그를 자꾸 쳐다본다. 그는 대부분 못 본 척했지만 서너 번은 더 마주친다.그는 빨리 버스에서 내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버스에 물이 차오르고 그는 물속에서 편안하다. 그는 물속에서 팔다리를 허우적대는 그의 팔을 잡고 얼굴을 마주한다. 그는 그에게 손짓으로 입을 다물라고 말한다. 그는 그에게 손짓으로 그를 보라고 말한다.그는 그에게 손짓으로 팔다리를 움직이지 말라고 말한다. 그는 눈을 깜박인다.그는 한 손으로 그의 팔을 잡고 버스를 빠져나와 수면을 향해 다른 한 쪽 팔을 젓는다. 그와 그는 천천히 빛 쪽으로 움직인다. 그는 가끔씩 다리를 젓는다. 그와 그의 얼굴이 물 밖으로 나온다. 그는 물 밖이 물속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그를 본다.그는 뱉어낼 게 없고 자꾸만 들이마신다. 그는 그에게 팔다리를 움직이지 말고 뒤로 누우라고 말한다.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는 곧잘 그의 말대로 한다. 그는 물 위에 누어있는 그를 끌며 한 쪽 팔을 젓는다.

흑백의 거실이다
. 거실이 흑백의 상태로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다. 거실이 숲으로 변한다. 창에서부터 초록이 생겨난다.창문은 그와 반대편에 있다. 창문이 먼저 초록으로 바뀐다. 앞쪽. 그와 가까운 쪽. 그러니까 그가 서 있는 쪽은 여전히 흑백이다. 뒤에서부터 초록이 앞으로 밀려온다. 그의 앞으로 온다.의심 없이 주저함 없이 초록이 앞으로 온다.

슬펐다
.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그래서 더 꽉 안고 그의 등을 쓸어내리고 또 쓸어내렸다. 그의 눈을 볼 수가 없어서 꽉 안았던 그의 몸을 놓자마자 앞으로 걸어갔다.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그를 뒤에 두고 걸어 나갔다.숲인가. 골목인가. 나무들이 있고,흙이 있고, 돌들이 있고, 사람들은 없었다.입 안이 꽉 차있었다. 뱉어내고, 뱉어내고,손가락을 입에 집어넣어 빼내도 입 안이 자꾸 꽉 찼다. 덩어리들을 빼내는데 눈물이 났다. 눈물을 느끼지 않으려고 입 안에 있는 것에 집중했다. 뱉고 또 뱉어도 계속 차올랐다. 뱉어내면서 우는데 그가 걱정스런 얼굴로, 아니면 미안한 얼굴을 하고 오른쪽 옆에 서 있었다. 잠에서 깨고 나서도 서운한 감정은 계속되었다. 폰을 집어 들고입에서 뱉어내는 꿈’, ‘포옹하고 떠나보내는 꿈을 검색했다. 읽어봐도 모르겠다. 꿈에서 깨어나고 한참을 더 서운했다.

끈적거리는 날이 계속된다
. 피부보다 더 끈적거리는 건 그의 기분이다. 그는 걷는다. 걷고 있는 느낌이 들지 않아 조금 더 속력을 내본다. 걷고 있는 느낌이 없다. 더 천천히 걸어본다.땅을 본다. 보도블록 모양들이 바뀐다.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이 나질 않아그는 생각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지나가는 차들을 본다. 걷고 있지만 모르겠다. 걸어지지 않는 느낌.걷는 느낌은 어떤 거였지? 바람을 일으키거나 바람이 어깨에 이마에 부딪히거나 소리에서 멀어지거나 소리에 가까워지거나 빛이 많아지거나 빛이 적어지거나 덜렁거리는 팔이 이상해 머리를 쓸어 넘기거나 모르는 사람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거나 모르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거나 모르는 사람들의 표정이 내 얼굴에 내 몸에 묻거나 흥얼거리다가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을 떠올리거나. 자꾸 보고 싶은 사람이 있고 걸어지지가 않고. 그 사람이 그의 기분에 착 달라붙는다.
그런데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야?” 그는 그를 태우고 계속 달렸다. 그는 눈감고도 갈 수 있을 만큼 잘 아는 동네라고 했다.주변은 컴컴했고 구불거리고 언덕이 많아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그는 학창시절 얘기를 하면서 그때부터 시작된 그의 복잡한 인간관계를 이야기했다. “여긴 섬이야.” “어떻게 여기가 섬이야?” “조금 전에 다리 건넜어.” 그는 괜히 보자고 했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지금 여기 왼쪽은 바다야. 큰 배들이 정박해있는 그런 바다야. 낮에는 예뻐.” 밤이어서 거기는 그냥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도로였다.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다.그와 그는 같은 노래를 좋아했고, 그는 노래를 좋아하다가 그를 좋아했다.그는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고, 그는 노래를 떠났다. 4년이 흘렀고, 시간이 지났으니 괜찮겠지 하고 이 도시에 사는 그가 생각나서 연락을 했다.그와 그는 그 노래 말고는 공통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그에게 적극적이었고, 그는 그에게 다시 미안했다. “우린 아주 가끔만 보자.”고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고, 그도 웃으면서잘 가. 또 봐요라고 했지만 그와 그가 다시 보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아는 목소리였다.

책을 꺼냈다
.
몸에서 물이 떨어졌다.
서둘러 차를 타고 떠났다.

실내 수영장이었다
. 천장과 오른쪽 벽은 유리로 되어있었다. 해가 지고 있어서 수영장 안은 밝지 않았고, 물속도 어두워지고 있었다. 팔을 젓는데 무거웠다. 오른쪽 어깨가 뻑뻑해 그는 힘들게 오른 팔을 들어올렸다. 팔이 마음껏 움직이지 않아 발을 찼다. 평소 수영할 때 그는 발을 거의 차지 않는다.이번에는 발을 크게 찼다. 발을 크게 차는 그 감각이 어색했고, 몸 전체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도 앞에 가는 사람을 따라가면서 그는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잠에서 깼을 때 오른 팔이 저렸고, 오른쪽 어깨가 아팠다. 그는 잠을 잘못 자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며칠 후에는 손가락들과 왼쪽 어깨가 아팠다.왼쪽 팔이 저렸다. 그는 오랜만에 촬영을 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다.통증이 계속 되었고 그는 목 디스크에 좋은 운동을 찾아 따라 했다. 거짓말처럼 다음 날 통증이 사라졌다.
만짐
 1
그는 끊임없이 세상을 떠나기 시작했다
새를 만지는 순간
발밑에 물이 고였다
그가 만지고 새가 조금 움직이고 그는 멈췄다
그가 만지고
새는 만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노출,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새의 발
꽉 붙들고 있는 것,
움칫대는 것에게는 정작 꼬리가 없었다
새가 조금 움직였고
내용 같은 것은 쉽게 떠났다
그는 커다란 맥박에 항의했다

2
나무의 가지마다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징과 신()을 가지고 있었다
해가 져도 내려오지 않았다
얼굴과 몸통이 마디에서 벗어났다
3
그의 어깨를 잡았을 때
파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발을 감췄다
노래하기 시작했다
물과 조각
이게 내 몸일까
자리가 비좁아졌다
순식간에 장례식까지 밀려난
내가 당신을 껴안을 수 있을까
계속해서 끝나는 실재
내 안에서 밤보다 커지는
이게 네 몸일까
말은 소용이 없고 미열과 같은 것이
그의 어깨를 파고들어간다
소였다. 그의 산책에 동행한 것은 황색 소였다. 그는 걸었다. 소와 함께 걸었다. 천천히 걸었다.그가 앞에 가고 소가 따라 왔다. 흙길도 걷고 풀밭도 걸었다. 바람이 불었고 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걸으면서 가끔씩 뒤를 돌아 소의 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소의 눈도 조용했다. 낮은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그가 소와 걸은 길은 삼각형 모양으로 나있었다. 퍼지는 빛 아래여서 그림자는 없었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작은 사물함 안으로 들어갔다.
사랑을 만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랑은 그가 만지는 모든 것을 떠나게 했다. 그가 만지는 것들이 동시에 그를 만졌고, 그래서 그는 적극적이면서 동시에 수동적이었다. 떠나는 것들도 그랬다. 그가 어떤 어깨를 만질 때 그 만짐은 맥락과 상관이 없었고,거기에서 죽음이 생겨나고 의미가 사라졌다. 아무도 그에게 그 어깨를 만지라고 하지 않았다. 어깨가 생기기도 전에 이미 만지고 있었다. 그것은 어깨이기 전의 어떤 것, 너무 일찍 뚫고 나온 비명 같은 것 혹은 사랑 같은 것이면서 동시에 사라지는 어깨였다.그의 손과 어깨는 서로를 파악하지 못했다. 거기엔 만짐만 있었다. 사라지는 어깨 같은 것이 매일매일 그의 옆에 있어서 그는 매일 어깨와 함께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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